내게 오는 길
2008. 7. 10. 01:38ㆍ잡다한 이야기
반응형
아침부터 햇살이 쨍쨍했다..
계속되는 폭염속에 여기저기 눈쌀을 찌푸린 사람들이 보인다.
난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다. 또 그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기도 하지만, 올해는 덥다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짜증낼 새가 없이 항상 기분은 들떠 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 잠이 들때까지 여러가지 상상으로도 기분이 좋을 만큼 최고다.
긴 시간 괴롭힐 것만 같았던 취업도 진로에 대한 고민도 그다지 큰 문제거리가 되지 않고,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의 기회가 찾아와서 나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즐거웠다. 특히 이런 자그마한 성공에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줄 수 있는 여자친구가 있기에 더욱 더 살 맛이난다. 나만 좋으면 되고 만족하면 되던 삶이 이제 '우리' 라는 단어가 되면서, 그 기쁨이 두배가 되었다.
어제였다. 여자친구의 친한 친구들을 만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밝은 성격을 가진 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더군다가 여러가지로 부족해 보이는 내가 그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칭찬을 해주니 몸둘바를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으로 칭찬보다는 격려를 한다. 앞으로 더 잘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자면서 스스로를 채찍질 한다.
우리는 싸울줄 모른다. 나는 사랑 싸움 같은 밀고 당기기 같은 것에는 취미도 없고 어떤게 미는거고 당기는 건지 모르는 사람이다. 허나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싸우면서 정들고 비온뒤에 땅이 굳는다고, 많이 싸워야 오래간다고... 어느것하나 여러 연애사를 보편적으로 대표할 수 없는 그야말로 '민간 연애 백서' 에 나올법한 내용이다.
오늘은 오후 6쯤, 내 얼굴에 그동안 오래 깃들어 있던 행복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자기가 나쁜애 같다고 말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내 마음을 말할 도리가 없다. 그저 그와중에도 직설적인 나의 말버릇이 원망스럽다. 나쁜애라.. 가끔 우리는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 칭찬이 많은 내 말과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여자친구의 말, 다소 마구 말하는 것 같은 나의 칭찬에 반응하는 여자친구가 얄밉기도 하지만 농담반 진담반이었다.
오늘도 몇마디 대화가 오갔을까... 긴 정적이 흘렀다. 난 여자친구의 마음의 집에 들어와 있다. 하지만 그녀가 머문 방문은 오늘도 빼꼼히 나를 내다본다. 난 그 방속을 문틈으로 기웃 거려볼뿐이다. 난 이집 저집 많이 번번히 이사때 마다 쫒겨난 사람이다. 또 가까스로 들어간 집에서도 노크만 열심히 하다가 그냥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노트에서는 그 방속의 주인이 얼굴을 빼꼼이 내민다. 아예 밖으로 나오진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눈만 마주치다가, 이제는 얼굴을 맞대고.. 서로 웃고 이야기 하고.. 나의 노크 횟수가 늘어 날때마다 그녀의 모습도 더 밝아지고 내가 그리던 그녀의 방의 모습도 희미한 퍼즐처럼 조금씩 조금씩 맞춰진다. 난 그녀의 방문앞에 서있다. 할 수 있을때 마다 수시로 방문을 두드린다. 문이 열리지 않아도 난 여기 서있기로 나와 그녀와 약속을 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그녀 역시도 문밖에 내가 서있으리라고 믿게 되었다. 언젠가 문 밖으로 나온 그녀를 내가 꼭 안아 줄 수 있을때 까지 그렇게 문앞에 서있다.
가끔 발이 저리고 허리가 아프고 주저 않아 있고 싶을때가 있다. 난 문 밖을 서성이다가 문전 박대를 당한적이 많은 사람이다. 그럴때마다 예전의 경험들이 불쑥 나를 찾아와 금새 내 마음을 괴롭힌다. 문 밖의 이야기들도 전부 열리지 않는 문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미련한 내 기다림이 지쳐서 그런 기다림을 다시는 안하고자 다짐해도 나 이렇게 또 문 밖에 서있다.
하지만 이제는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 노크를 한다. "똑똑똑", 그러면 그녀는 조금은 슬픈 눈으로 기쁜듯 날 반긴다. 그리고 문밖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괜찮다. 내가 열어준 좁은 그 방문으로 들어가면 되니까.. 그 안이 비록 좁고 불편할지라도 그녀를 볼 수 있으니까 괜찮다. 함께라는 것을 원한 것이지, 넓고 아늑한 곳을 원한 것이아니다. 문밖의 비와 바람,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으면 난 그걸로 괜찮다. 그 방안이 넓지 않아도, 편하지 않아도, 밖으로 나가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당신이 문을 열어 줄 수 있다면...
나서기 두려운 문 밖으로 갑자기 나와주지 않아도 좋다. 언젠간 안과 밖이 같아 질테니까...
센티멘탈 해진 내 감정이 뱉어내는 비유와 상징은 추상적이다 못해, 난장판이다. 그냥.. 나는 당신이 내게 오는 길이 조금 길어도 괜찮다. 길어진 만큼 내가 다가가면 되니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