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뜨거운 새벽... 스산한 새벽 바람이 덥게 느껴질 정도로 뜨거운 새벽이다. 새벽 1시가 거의 다되어서 버스에 올라 탔지만, 가는 내내 잠들 수 없다. 미안한 마음이 온 마음 가득히 차올라서 뭐가 그렇다고 할 것도 없다.
난 엄살쟁이다. 남들 다 지나치는 이 계절과 이 시기가 왜이리도 춥고 날카롭게 느껴지는지... 의지 박약도 아니고, 딱히 낙방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데로 잘 하고 있는데도 왠지 조바심이 드는 모습은 왜일까.. 오늘은 굉장히 뜻깊은 날이다. 오늘이라고 하는 시점은 9월 20일 토요일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새삼 뜻 깊은 날이라고 하니까, 괜시리 더 미안해 진다.
여자친구를 만난지 200일이 되었다. 딱히 특별한 날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200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감사하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여자친구 생각으로 보낸게 얼마만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일, 놀고 싶은 것 어느하나 놓치지 않고 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그 두가지보다 비중이 더 커지는 관심사가 생긴 것도 아주 오랜만이다.
자랑을 하자면 내 여자친구는 아주 속이 깊다. 내가 하는 사랑이 에로스라면 내 여자친구의 사랑은 아가페이다.. 한없이 나를 지지하고 이해해주는 사람.. 나의 단점과 나쁜 버릇을 다 알고 있지만, 그 자체로도 나를 인정해주는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중에서는 유일하다. 이런 내가 어디가 좋은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를 만나고 난 후, 예뻤던 얼굴은 더더욱 예뻐지고, 몸매도 예뻐지고, 말투도 예뻐지고.. 없다던 애교도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항상 발전하고 아름답게 변해가는 여자친구를 보면, 난 참 축복받았다.
난 남한산이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딛기 위해서 일어섰다. 항상 부모님 손에서 벗어나지 않고 내 멋대로 하다가 이제 처음으로 부모님의 손을 놓고 걸어 보려고 일어난 아기처럼 뒤뚱거린다. 그런데 역시나 자신이 없다. 난 무엇보다도 내가 잘 났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나는 나를 적어도 인정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이번 만큼은 자신이 없다. 이런 볼멘 소리를 늘어놓는 와중에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 얼굴은 내 마음의 창이다. 불편하고 행복하고 피곤하고 즐거운 내색이 얼굴에 훤히 드러나는 좀 처럼 포커페이스라고는 찾아볼수가 없는 녀석이다. 이런 나의 표정을 매일 보고 있는 여자친구는 아무말 없이 나를 이해해 준다. 아프고 힘들어도 힘든 내색 하나 안한다. 얼굴에는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지만, 끙끙대는 내 옆에서 아무말 없이 있어준다. 요 근래에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오빠는?" 항상 모든 의사결정에 나에게 먼저 선택권을 준다. 사실 나는 선택에 굉장히 낯설다. 어딜 가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 이라는 것을 위주로 선택해본적이 없어서.. 특히 우리와의 관계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준비되어있지 않은 모습, 어수선하고 불안한 눈동자, 행선지가 없는 데이트.. 이런 답답한 것들에 화가 날 법도 한데,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로 나를 위로한다. 오늘도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 곁에서 사각사각 공부하는 소리를 내며 고군 분투하는 모습이 미안했지만 또 그렇게 나는 이기적이게 내 할일만 무덤덤할 뿐이다. 미안하다.. 소중하다고 고맙다고 말로만 중얼거리는 내 모습이 너무 간사하다.. 세상에 치이면서 그렇게 소중해 했던 마음을 잊을때마다.. 미친놈 같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나쁜 인간의 표본이 나라니... 새벽 2시가 넘었다.. 한시간이나 되는 시간동안 버스안에서 끄적거려 본다. 술김에 한 말이 전혀 아니다.. 그냥.. 너무 미안하고 스산한 그녀와의 200일 기념일이다.. 말뿐인 남자가 되면 안되겠다.
방금 블로그에 들렸다 왔다. 여전히 힘든 내색을 말로하지 않는 그녀는 바보일까, 천사일까.. 아마도 둘다 이지 않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시간이 있을때 잘할 걸.. 그녀가 있을때 잘할 걸.. 뭐 치고 보면 나도 한게 많은 사람이다. 둘만의 여행.. 둘만의 비행기, 둘만의 식사, 둘만의 추억, 둘만의 시간.. 내가 혹은 그녀가 만들어준 잊지 못할 순간들도 참 많은데 왜 잘 못한것 부터 생각나는지 딜레마다.
새벽 3시가 넘었다. 어느덧 눈도 피로해지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왜일까.. 잠든 그녀를 깨우고 싶을 만큼 할말이 많아서 이렇게 블로그에 끄적여본다. 샤워를 끝내고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피곤한 얼굴에도 예쁘다고 노래를 부르는 나 때문에 싱글벙글하던 그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뭔가 그녀의 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웃으면서도 피곤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슬아슬 보이는 피곤한 기색이 웃는게 웃는게 아닌 모습으로 만든다. 이기적인 배, 축 쳐진 어깨.. 어느 한 구석 예뻐진데 없이 그대로인 내 모습과 날로 예뻐지는 그녀와 비교가 된다.
거울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가끔은 내 치부를 보고 내가 스스로 놀랠수 있으니까.. 이기적인 시점, 남 헐뜯기 바쁜 입술, 이리저리 피해가기만 하려는 합리화만 가득한 궤변, 상황 안가리는 큰 목소리, 있어도 귀기울이지 않는 귀... 나쁜건 다 갖췄다. 이런 나에게 나쁜놈이 아닌, '남땡깡' 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나만 봐주는 여자친구를 어찌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 안할리가 있겠는가...
딱히 할말이 없다. 미안하다는 말도 이제는 뻔뻔하게 느껴진다. 너무 미안해서 내가 지쳐 쓰러져 못 일어날 때까지 지켜주고 싶고 내가 느낀만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말이 '사랑한다' 라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 진정아, 조금 더.. 아니 많이 더 많이 나아지는 오빠가 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