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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bbies & Tour

10. 27. 남한산성 등반기 (남한산성의 역사 & 탐방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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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남한산성을 가게 된 이유는..? 첫째로는 별로 할일도 없고.. 둘째로는 운동도 해야겠고.. 또 오랜만에 남한산성에 다시 찾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어서 가게 되었다. 코스는.. 남한산성 유원지 입구에서 부터 남문 까지 올라서 수어장대를 찾아 가고 그 다음은 서문으로.. 그리고 서문 근처에 있는 연주 봉옹성에 다다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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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지도 (http://maps.naver.com) >

대략 저런 루트로 가게 되었다. 먼저 남한산성의 정보에 대해서 알아보면 흥미있는 내용들이 많은 산성이라는 걸 알 수가 있다. 병자호란과 일제 강점기... 가슴 아픈 우리 민족의 역사들을 안고 있는 남한산성이기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가슴이 뻣뻣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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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였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겼다.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이 자리잡고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의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은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그 중에서 특히 조선 그 중에서 특히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인조 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 공사가 시작되어 인조4년(1626년)에 완공한데 이어,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 등이 차례로 들어서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 초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 이후 주인을 잃은 민족의 문화유산들은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다가 하나 둘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주변에는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에서 터만 남아있거나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최근 들어 남한산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출처 : 경기도 남한산성 도립공원
(http://www.namhansansung.or.kr/Menu2/SubMenu/sub11.jsp)
남한산성이 가져다 주는 추억은 다른 사람들 보다 나에게 의미가 깊다. 예전 어렸을 적에 큰 이모님 께서 이곳에서 장사를 하셨었다. 친지들이 다 도시에 사는 나로서는 시골다운 시골을 경험에 본적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일까 우리 어머니께서는 나를 이곳에 많이 데려가셨다. 나에게는 시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은 남한산성에서의 기억 뿐이다. 도시와 단절된 이곳에서 나는 이곳이 '할머니댁' 같은 느낌을 받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등산을 하기 전날 부터 예전과는 다른 생각들에 잠기며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