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008. 8. 30. 03:26잡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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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되면 숨가쁘게 살아왔던 낮은 잊은채 또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산다. 왠일인지 잘은 알 수 없지만, 바깥에서 기력을 다 쓰고 온듯 해도.. 집에오면 이토록 멍하게 있을 수 있음은 또 하나의 미스테리이다. 나는 아주 골이 깊은 녀석이다. 어떤 생각도 미래도 계획도.. 하나 대충 하는 법이 없다. 나의 길은 정해져 있다고 믿으며, 그 정해진 길로 올바르게 가려고 노력할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를 왜 꺼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건 계속된 표류이다. 욕심과 이상, 그리고 현실과 한계의 약쪽을 오가며 하루는 기뻤다 하루는 슬펐다를 반복하기도 한다. 물론 감정의 기복이 급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잠시 긍정적이었다가 부정적이었다가를 반복할 뿐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나는 4학년이고, 그리고 취업을 위한 정보전에 능해야 취업의 문이 더 넓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김없이 저녁때가 되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따져보고 나의 실력을 재 본다. 후회 같은걸 평생 안하고 살것 같았던 나도, 이제와서 가끔은 영어 공부에 대한 후회를 해본다. 딱 50점만 더.. 라는 생각을 왜 하는지 정말 속물이다. 세상에 찌들어 간다는 말이 이런말일까? 세상의 흐름을 잘 타자는게 내 목표이자 이상이었는데 이제는 그 현실과 한계속에서 그 세상에 흐름에 몸을 싣고 있는 듯 하다.

레프팅을 하다보면 물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는 허우적 거리지 않고, 물에 그냥 몸을 내 맡긴다. 이처럼 허우적 거려봐야 더 우울해지고 나락으로 빠지는 취업 시장에서 그저 시장의 손님이 원하는 대로 나의 실력과 스펙을 맞추어 본다. 오늘 수업을 듣던 도중, 앞으로 졸업후 희망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한 학생과 교수가 주고 받는 것을 보았다. 대개 이런 경우에는 없어도 있는듯 구체적이고 다소 비현실적인 자신의 10년동안의 계획을 늘어놓아야 하는데, 아뿔싸.. '저는 그냥..' 이라는 말과 함께 입을 연 그 학생은 역시... 취업 사이트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1차 직종군을 운운하고 있다. 저런 바보 같은 놈..

난 내가 뛰어나서 바보 같다고 한 것이 아니다. 세상은 눈치밥이다. 면접도 눈치가 빠를수록 좋다. 좀 더 넓은 스케일과 지원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해서 얼마나 조사를 하고 알고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인데, 저런 식으로 대답을 하니 욕을 먹어도 싸다. 나의 10년동안의 계획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가장 먼저 생각 나는 것은 직군도 아니고 직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럴싸한 윤리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재도 아니다. 실사 머리속에는 '잘 먹고 잘 살다 못해, 저축도 하고 부동산으로 투자도 하는 사람' 이다. 하지만 이런것 다 묻어 버리고 입으로는 'CEO 라는 둥 CTO라는 둥' 의 일에 대한 욕망을 불태운다.

이러다보니 굉장히 우울해 졌다. 한시간 전이었을까? 전화기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 '힘내.. 잘자..' 라는 말이 그토록 감동적이었을까? 아니면 그 말이 듣고 싶었을까?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목이 메어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없는 마음의 동요, 흐려지는 눈, 뜨거운 볼. '힘내 잘자' 라는 말이 '잘 힘내자..' 라고 조각조각 맞춰지듯하다. 출발선에 서기까지의 시간이 왜이리 어려운지.. 이제 시작도 안했는데, 앞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트랙이 궁금해서 도무지 잠이 안온다.

슬프다, 쓸쓸하다, 외롭다 라는 말은 외톨이 처럼 홀로 있다는 느낌을 받을때 쓰는 말인데, 방금전에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쓸쓸하다고, 곁에는 여자친구도 있고 가족들도 있다. 쓸쓸하다고 말할 처지가 못되는데.. 그런 나는 쓸쓸하다. 대한민국 남자의 어깨는 넓지만 고독하고 그늘진 듯 하다. 아버지의 60년 가까운 무게를 느끼듯, 내 어깨에도 그렇게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댄다. 사회 진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마음, 그리고 늘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여러가지 따뜻한 가슴으로 실천할 수 있는 행동들을 간직하고 싶어서 발버둥을 쳐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행동들 몇가지도 가슴속에 잠시 묻어둬야 한다니...

어린 시절, 항상 말썽만 피우던 개구쟁이 소년시절.. 가장 따뜻한 곳이라고 어디냐고 묻는 다면, 아마 어머니 품속을  가장 먼저로 꼽을 것이다. 말썽을 피우고 야단을 맞고, 몽둥이로 신나게 매를 맞고 얼마 안있으면, 풀 죽어 있는 아들이 가엽고 때린것이 미안했는지, 그렇게 나를 달래고 꼭 안아주셨다. 그렇게 내 어린날의 실수는 어머니 품 안에서 자연히 치유가 되었다. 이제 나이가 25살이되었다. 논어에서 나오는 나이를 일겉는 말로 20살의 약관과 30살의 이립이 있다. 나는 그 중간에 서 있다. 난 내 뜻을 서서히 세우며 사회가 주는 호칭과 함께 시작할 나이다. 더불어 나에게 주어진 권리만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제 나의 어린날과는 다르게, 어른날에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나의 실수를 용서받을 만한 따뜻한 품은 없다. 스스로가 자신을 위안하고 위로하고, 세상에 용서를 구하고 다시 재기 하는 방법만이 허락된다. 아쉽고, 미안하다. 이제야 그 품이 그립고 또 그립다. 사춘기 시절 어머니에게 그 흔한 애정표현 한번 못해본게 이제 와 후회가 된다. 시간이 지나 아기때의 나보다 10배 이상은 더 크던 어머니는.. 집에서 두번째로 큰 어른이었다면, 이제는 가장 작은 어른이 되었다. 있을때 잘하라는 말이 있었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작았을때 어머니 품에 안겨 용서를 구할걸.. 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해본다.

변해가는 모든것들이 하나하나 다 아쉽다.. 친구도 사람도 사랑도.. 어느 하나도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인데 괜시리 욕심을 내서 붙잡고 싶다. 흘러가는 시간도, 나의 답답함도, 후회와 모든 감각들까지도...

뜨거운 태양볕에 몸은 덥지만 마음은 차갑다... 한 낮에도 달빛은 내 마음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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