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에 고민 거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것 일까에 대한 고민, 사람에 대한 고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고민 수없는 고민들 아니 걱정들에 휩싸여서 살고 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오늘의 걱정이 내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런 내일에 대한 걱정들이 하나하나 늘어갈때 마다 가슴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내일'은 우리에게 희망의 미래를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희망있는 미래보다는 절망의 미래를 많이 상상하고는 하지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런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내일, 내일 모레.. 계속 미루고 미루는게 습관이 되어버린것 같습니다.
보통은 '내일' 이라는 가까운 미래와 타투다 보면, 결론이 나질 않고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이 바뀌고 수십번씩 다짐하고 수십번씩 후회합니다. 사람 마음이라는것이 갈대와 같아 갈필을 못잡고 흔들리는 것을 보면 스스로 그렇다고 느끼고는 있지만 역시나 갈필을 못잡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저는 그것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두려움의 원초적인 내면에는 '의심'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고 신으로 부터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서 교회, 절, 성당등에 다니면서 불투명한 미래를 피해 가듯이, 또 그런 안식에 대한 막연한 의심과 불안함으로 또 다시 두려움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사례도 있겠지요.
인간은 모두 어리석은 존재 인 것같습니다. 적어도 저라는 인간에게는 그 어리석음이 내려진 것이 확실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겠다, 딴청 피우지 않고 공부하겠다, 내일은 이것저것 하겠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 나의 이것저것 다 주는 멍청한 짓은 안하겠다, 이제 내 실속도 챙기겠다, 돈되는 일을 하겠다, 횡설수설하지 않겠다... 이런 미래에 대한 약속들이 모두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아예 이런 걱정과 어리석은 다짐을 하는 중추적인 부분을 무뎌지게 한다는 겁니다. 잠을 극도로 줄였습니다. 아침이 다되어서 잠이 들지만, 점심때도 되지 않아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피곤하고 지친몸을 이끌고 주말이고 평일이고 가리지 않고 학교에 갑니다. 그리고 막연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것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머릿속 가득채우던 고민들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얼굴에 피곤함은 역력하고, 몸은 점점 움직이기가 힘들고 고달펐지만 해방감을 만끽해며 계속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정말 잘 생각한 방법이라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이었습니다. 오후 10시 30분, 평소보다 30분정도 일찍 도착한 버스정류장, 집으로 가는 광역 버스를 타기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행선지로 가지 않는 버스가 제앞에 섰고 차창을 통해서 비치는 제 모습을 보는 순간 힘들어서 였을까, 불쌍해서 였을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주변사람들이 볼까 애써 칠흑같은 하늘을 쳐다보았고 또 주변사람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피곤해 보이는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언가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있는 듯 보였고 다들 한결같이 기뻐보였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말이죠.
세상에 단 한사람, 나라는 사람만이 가장 불행한 존재이고, 또 그 불행을 피하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고민들이 피곤한 몸과 정신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다른 도피처로 방랑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사람도 없고, 고민도 없고,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고, 걱정도 없고, 고민도 없는 그런 완벽한 유토피아로 떠나볼까 합니다. 그 유토피아가 어디인지, 찾아냈으니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마음속에 유토피아를 만들까 합니다. '내일' 이 없는 유토피아.. 오늘만을 살아가는 자신을 만들려 합니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오늘의 사랑에 열정을 불태우고, 오늘의 사람에게 헌신하며, 오늘의 일에 혼신을 쏟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합니다만, 이번에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지우면 몸에서도 멀어질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내일'은 우리에게 희망의 미래를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희망있는 미래보다는 절망의 미래를 많이 상상하고는 하지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런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내일, 내일 모레.. 계속 미루고 미루는게 습관이 되어버린것 같습니다.
보통은 '내일' 이라는 가까운 미래와 타투다 보면, 결론이 나질 않고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이 바뀌고 수십번씩 다짐하고 수십번씩 후회합니다. 사람 마음이라는것이 갈대와 같아 갈필을 못잡고 흔들리는 것을 보면 스스로 그렇다고 느끼고는 있지만 역시나 갈필을 못잡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저는 그것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두려움의 원초적인 내면에는 '의심'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고 신으로 부터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서 교회, 절, 성당등에 다니면서 불투명한 미래를 피해 가듯이, 또 그런 안식에 대한 막연한 의심과 불안함으로 또 다시 두려움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사례도 있겠지요.
인간은 모두 어리석은 존재 인 것같습니다. 적어도 저라는 인간에게는 그 어리석음이 내려진 것이 확실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겠다, 딴청 피우지 않고 공부하겠다, 내일은 이것저것 하겠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 나의 이것저것 다 주는 멍청한 짓은 안하겠다, 이제 내 실속도 챙기겠다, 돈되는 일을 하겠다, 횡설수설하지 않겠다... 이런 미래에 대한 약속들이 모두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아예 이런 걱정과 어리석은 다짐을 하는 중추적인 부분을 무뎌지게 한다는 겁니다. 잠을 극도로 줄였습니다. 아침이 다되어서 잠이 들지만, 점심때도 되지 않아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피곤하고 지친몸을 이끌고 주말이고 평일이고 가리지 않고 학교에 갑니다. 그리고 막연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것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머릿속 가득채우던 고민들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얼굴에 피곤함은 역력하고, 몸은 점점 움직이기가 힘들고 고달펐지만 해방감을 만끽해며 계속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정말 잘 생각한 방법이라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이었습니다. 오후 10시 30분, 평소보다 30분정도 일찍 도착한 버스정류장, 집으로 가는 광역 버스를 타기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행선지로 가지 않는 버스가 제앞에 섰고 차창을 통해서 비치는 제 모습을 보는 순간 힘들어서 였을까, 불쌍해서 였을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주변사람들이 볼까 애써 칠흑같은 하늘을 쳐다보았고 또 주변사람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피곤해 보이는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언가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있는 듯 보였고 다들 한결같이 기뻐보였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말이죠.
세상에 단 한사람, 나라는 사람만이 가장 불행한 존재이고, 또 그 불행을 피하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고민들이 피곤한 몸과 정신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다른 도피처로 방랑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사람도 없고, 고민도 없고,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고, 걱정도 없고, 고민도 없는 그런 완벽한 유토피아로 떠나볼까 합니다. 그 유토피아가 어디인지, 찾아냈으니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마음속에 유토피아를 만들까 합니다. '내일' 이 없는 유토피아.. 오늘만을 살아가는 자신을 만들려 합니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오늘의 사랑에 열정을 불태우고, 오늘의 사람에게 헌신하며, 오늘의 일에 혼신을 쏟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합니다만, 이번에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지우면 몸에서도 멀어질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